백일천하는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빠져나와 프랑스를 다시 다스린 짧은 기간이에요. 이름은 '백 일'이지만 실제 일수는 어디를 끝으로 잡느냐에 따라 달라요. 보통 기준으로는 110일 안팎이고, 흔히 말하는 95일은 끝점을 다르게 잡은 숫자예요.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1815년 3월 20일 파리 입성부터 7월 8일 루이 18세 복위까지예요. 이 기준으로 세면 110~111일이 나와요. '실제 95일'은 끝을 6월 22일 두 번째 퇴위로 잡은 숫자예요. 그것도 첫날과 끝날을 모두 셌을 때만 나와요.
나폴레옹 백일천하는 어떤 순서로 흘러갔나요?
먼저 전체 흐름부터 볼게요. 1815년 한 해 안에서 다음 사건들이 이어졌어요.
- 2월 26일: 나폴레옹의 소함대가 엘바섬 포르토페라이오 항구를 떠났어요.
- 3월 1일: 프랑스 남부 해안 골프쥐앙에 상륙했어요.
- 3월 5일: 그르노블에서 제5보병연대가 나폴레옹 쪽으로 넘어갔어요.
- 3월 13일: 빈 회의에 모인 열강이 나폴레옹을 '법 밖의 존재'로 선언했어요.
- 3월 14일: 네 원수가 병력 약 6,000명을 이끌고 합류했어요.
- 3월 20일: 나폴레옹이 파리에 들어가 튈르리궁에 도착했어요.
- 4월 4일: 나폴레옹이 유럽 군주들에게 서한을 보냈어요.
- 4월 22일: 새 헌법인 추가법이 공포되고 국민투표에 부쳐졌어요.
- 6월 1일: 샹드마이 의식에서 나폴레옹이 추가법 공포에 서명했어요.
- 6월 18일: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했어요.
- 6월 22일: 나폴레옹이 두 번째로 퇴위했어요.
- 7월 8일: 루이 18세가 다시 왕위에 올랐어요.

이 흐름에서 백일천하의 시작점은 보통 3월 20일이에요. 엘바섬을 떠난 2월 26일이 아니에요. 끝점은 7월 8일로 보는 경우가 많아요. 다만 6월 22일을 끝으로 보는 자료도 있어요. 일수 차이는 이 두 기준에서 생겨요.
엘바섬 탈출부터 파리 입성까지 (1815년 2월 26일~3월 20일)
나폴레옹의 소함대는 2월 26일 포르토페라이오를 떠났어요. 배는 3월 1일 골프쥐앙에 닿았어요. 상륙한 뒤 나폴레옹은 파리를 향해 북쪽으로 올라갔어요.
첫 고비는 그르노블 근처에서 찾아왔어요. 왕당파 군대가 길을 막아섰어요. 이때 나폴레옹은 병사들 앞에 나서서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져요.
"너희 가운데 황제를 쏠 자가 있다면, 내가 여기 있다."
결국 3월 5일 그르노블에서 제5보병연대가 나폴레옹 쪽으로 넘어갔어요. 이어 네 원수도 나폴레옹 쪽에 섰어요. 네 원수는 3월 14일 롱르소니에에서 약 6,000명을 이끌고 합류했어요.
이렇게 병력을 불린 나폴레옹은 3월 20일 파리에 들어갔어요. 같은 날 튈르리궁에 도착했어요.
파리 입성 뒤 나폴레옹 정부는 무엇을 했나요? (빈 회의 선언과 추가법)
나폴레옹이 파리에 닿기 전에 바깥 상황은 이미 달라져 있었어요. 빈 회의에 모인 열강은 3월 13일 나폴레옹을 법 밖의 존재(outlaw)로 선언했어요. 이 선언으로 나폴레옹이 품었던 평화의 희망은 사라졌어요.
파리에 들어간 뒤인 4월 4일, 나폴레옹은 유럽 군주들에게 서한을 보냈어요.
안으로는 새 헌법을 내놓았어요. 나폴레옹은 벤자맹 콩스탕에게 새 헌법 초안을 맡겼어요. 이 헌법이 바로 추가법이에요. 정식 이름은 '제국 헌법 추가법(Acte additionnel)'이고, 자유주의 성향의 헌법으로 소개돼요.
추가법은 4월 22일 공포된 뒤 국민투표에 부쳐졌어요. 찬성표는 1,305,206표에 그쳤어요. 이어 6월 1일 샹드마이 의식에서 나폴레옹이 공포에 서명했어요. 워털루 전투까지 남은 시간은 17일이었어요.
워털루 전투는 백일천하를 어떻게 끝냈나요? (1815년 6월 18일)
결정적 장면은 1815년 6월 18일 워털루에서 벌어졌어요. 백일천하 원정 전체의 승패를 가른 전투였어요. 웰링턴이 이끈 영국 주도 연합군이 프랑스군과 맞섰어요. 여기에 블뤼허의 프로이센군이 지원으로 들어왔어요. 두 군대가 힘을 합쳐 프랑스군을 무너뜨렸어요.

흔히 "영국·프로이센 연합군에 졌다"고 줄여 말해요. 정확히는 웰링턴의 연합군과 블뤼허의 프로이센군이라는 두 군대예요. 그래서 '영국 주도 연합군'이라는 표현을 써요.
패배는 곧바로 정치로 이어졌어요. 나폴레옹은 6월 22일 두 번째로 퇴위했어요. 워털루 전투 나흘 뒤의 일이에요. 같은 날 백일천하 정부가 해산되고 집행위원회가 꾸려졌어요.
이후 루이 18세가 7월 8일 다시 왕위에 올랐어요. 보통은 이날을 백일천하의 끝으로 봐요.
백일천하는 실제로 며칠이었나요? (95일·110일·111일의 차이)
'백일'이라는 이름과 달리 실제 일수는 기준에 따라 달라져요. 숫자가 갈리는 이유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끝점을 언제로 잡는지예요. 다른 하나는 첫날과 끝날을 모두 세는지예요.
세는 방식부터 짚어 둘게요. 경과일은 첫날을 빼고 세는 방식이에요. 양 끝 포함은 첫날과 끝날을 모두 하루로 세는 방식이라 하루가 더 많아요.
| 기준 | 기간 | 경과일 | 양 끝 포함 |
|---|---|---|---|
| 일반 정의(루이 18세 복위까지) | 3월 20일~7월 8일 | 110일 | 111일 |
| 두 번째 퇴위까지 | 3월 20일~6월 22일 | 94일 | 95일 |
| 엘바섬 출항부터 | 2월 26일~7월 8일 | 위 일반 정의보다 길어짐 | 위 일반 정의보다 길어짐 |
자료마다 숫자도 달라요. 같은 3월 20일~7월 8일 기간을 110일로 적는 곳도 있고 111일로 적는 곳도 있어요. 보통은 7월 8일을 끝으로 봐요.
반면 일부 프랑스 자료와 정부 존속 기간은 6월 22일을 끝으로 봐요. 어느 쪽이 맞다고 하나로 정하기보다 매체와 기준에 따라 다르다고 이해하는 편이 정확해요.
그럼 직접 세어 볼까요? 3월 20일부터 6월 22일까지예요.
- 3월 20일 다음 날부터 3월 31일까지: 11일
- 4월 한 달: 30일
- 5월 한 달: 31일
- 6월 1일부터 22일까지: 22일
모두 더하면 경과일은 94일이에요. 첫날인 3월 20일까지 하루로 넣으면 95일이 돼요. '실제 95일'이라는 숫자는 이 기준으로 셌을 때 나와요.
같은 방식으로 6월 22일에서 7월 8일까지는 경과일 16일이에요. 94일에 16일을 더하면 110일이에요. 첫날까지 넣으면 111일이에요. 110일과 111일은 이 셈법 차이에서 갈려요.

그래서 "백일천하는 실제로 95일"이라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에요. 다만 퇴위일을 끝으로 잡고 양 끝을 셌다는 조건이 붙어야 해요. 보통 기준으로는 "약 110일"이라고 말하는 편이 맞아요. 글이나 발표에서 숫자를 쓸 때는 기준을 함께 밝히면 혼선이 없어요.
'백일'이라는 이름은 누가 처음 썼나요?
'백 일(les Cent Jours)'이라는 표현은 나폴레옹 쪽이 아니라 왕정 쪽에서 나왔어요. 파리 지사 샤브롤 백작이 처음 이 말을 썼어요. 7월 8일 돌아온 루이 18세를 맞는 환영 연설에서였어요.
이 사실은 기간 논쟁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돼요. '백 일'이라는 이름과 실제 일수가 꼭 맞지는 않아요. 이 표현이 처음 나온 날이 바로 루이 18세가 복위한 7월 8일이에요.
엘바섬 탈출과 백일천하, 헷갈리기 쉬운 구분
백일천하를 다룰 때 자주 섞이는 개념을 짚어 볼게요.
- 엘바섬 탈출과 백일천하의 시작: 엘바섬을 떠난 날은 2월 26일이에요. 백일천하의 시작은 보통 파리 입성일인 3월 20일로 잡아요. 그 사이 약 3주는 상륙과 행군 기간이에요.
- 워털루 패배와 백일천하의 끝: 워털루 전투는 6월 18일이에요. 그런데 이날 백일천하가 끝난 건 아니에요. 퇴위는 6월 22일, 루이 18세 복위는 7월 8일이에요.
- 첫 번째 퇴위와 두 번째 퇴위: 6월 22일 퇴위는 나폴레옹의 두 번째 퇴위예요. 첫 번째 퇴위 뒤 엘바섬에 머물렀고, 그곳을 떠난 것이 백일천하로 이어졌어요.
- 빈 회의 선언과 워털루 전투: 열강의 법외 선언(3월 13일)은 나폴레옹이 파리에 들어가기 일주일 전에 나왔어요. 워털루 전투보다 석 달 이상 앞선 일이에요.
이렇게 날짜를 나눠 두면 "백일천하는 워털루에서 끝났다"는 말이 왜 반쯤만 맞는지 알 수 있어요. 군사적으로는 워털루가 결정타였어요. 정치적으로는 퇴위와 복위라는 절차가 뒤따랐어요.
마무리
백일천하는 1815년 3월 20일 파리 입성부터 7월 8일 루이 18세 복위까지를 말해요. 일반 기준으로 110~111일이에요. '95일'은 6월 22일 두 번째 퇴위를 끝으로 잡고 양 끝을 셌을 때의 숫자예요. 시험이나 글에서 숫자를 쓸 분이라면 어떤 끝점을 기준으로 삼았는지 함께 적으면 돼요. 1차 퇴위와 엘바섬 유배의 배경이 궁금한 분은 아래 글을 이어서 보면 좋아요.
출처
- Wikipedia - Hundred Days
- Brewer's Dictionary of Phrase and Fable - Hundred Days
- Wikisource - Declaration at the Congress of Vienna (1815년 3월 13일)
- Fondation Napoléon - Jean Tulard, Jeudi 1er juin 1815, Le Champ de mai
- Wikipedia - French Government of the Hundred Days
- 위키백과 - 백일천하
- William Sadler (1782–1839), The Battle of Waterloo, 1815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