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생애는 일곱 장면만 순서대로 잡아 두면 돼요. 출생, 툴롱 포위전, 이탈리아 원정, 브뤼메르 쿠데타, 황제 즉위, 몰락과 백일천하, 세인트헬레나 유배예요. 코르시카섬에서 태어난 포병 장교가 황제가 되고, 두 번 물러난 뒤 유배지에서 숨진 이야기예요. 1769년에 태어나 1821년에 숨졌어요.
처음 공부하는 분이라면 이 일곱 장면의 순서와 연도만 먼저 잡아 두면 돼요. 세부 날짜는 아래 연표에 모아 두었어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어떤 인물인가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랑스 제1제국의 황제, 나폴레옹 1세예요. 프랑스 본토가 아닌 지중해의 코르시카섬 출신이에요. 군사학교를 거쳐 포병 장교가 됐어요. 그리고 프랑스 혁명기의 혼란 속에서 빠르게 이름을 알렸어요.
정치 경력은 세 단계예요. 1799년 쿠데타로 통령이 됐어요. 통령은 쿠데타 뒤 나라를 이끈 세 명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나폴레옹은 그중 제1통령으로 실권을 쥐었어요. 1802년에는 종신통령이 됐고, 1804년에는 황제로 선포돼 제1제국을 세웠어요.
황제 자리에는 두 번 올랐어요. 첫 번째는 1804년 5월 18일부터 1814년 4월 6일까지, 약 10년이에요. 두 번째는 1815년 3월 20일부터 6월 22일까지, 약 100일뿐이에요. 이 짧은 두 번째 재위를 '백일천하'라고 불러요. 두 번 모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이를 퇴위라고 해요.
흔히 "1804~1815년 황제"라고 쓰지만, 그 사이에 엘바섬 유배 기간이 끼어 있어요. 이 점만 기억해 두면 헷갈리지 않아요.

나폴레옹 연표: 날짜와 나이로 보는 주요 전환점
연표는 나폴레옹 재단의 '주요 날짜' 연표를 따랐어요. 괄호 속 나이는 생일(8월 15일)을 기준으로 센 만 나이예요.
- 1769년 8월 15일: 코르시카 아작시오에서 출생
- 1779년 5월 15일: 브리엔 군사학교 입학(9세)
- 1793년 6월 13일: 가족과 함께 코르시카를 떠나 툴롱 도착(23세)
- 1793년 8월 28일~12월 19일: 툴롱 포위전, 포병 지휘관으로 첫 명성(24세)
- 1795년 10월 5일: 파리에서 왕당파 봉기 진압에 참여(26세)
- 1796년 3월 2일: 이탈리아 방면군 사령관 임명, 3월 11일 출발(26세)
- 1798년 5월 19일: 이집트 원정 출발(28세)
- 1799년 11월 9~10일: 브뤼메르 쿠데타, 임시 통령(30세)
- 1799년 12월 15일: 새 헌법 공포, 제1통령(30세)
- 1802년: 국민투표로 종신통령 확정(32~33세)
- 1804년 5월 18일: '프랑스인의 황제' 선포, 제1제국 성립(34세)
- 1804년 12월 2일: 파리 노트르담에서 대관식(35세)
- 1814년 4월: 퐁텐블로에서 첫 번째 퇴위(44세)
- 1814년 5월 4일: 엘바섬 상륙(44세)
- 1815년 3월 20일: 엘바 탈출 후 파리 입성, 백일천하 시작(45세)
- 1815년 6월 18일: 워털루 패배, 6월 22일 두 번째 퇴위(45세)
- 1815년 10월: 세인트헬레나섬 도착(46세)
- 1821년 5월 5일: 세인트헬레나 롱우드에서 사망(51세)
나이로 다시 보면 흐름이 또렷해져요. 24세에 첫 명성을 얻었고, 30세에 나라의 실권을 잡았어요. 34세에 황제가 됐고, 45세에 마지막으로 권좌에서 내려왔어요. 정점에서 몰락까지 약 10년이에요. 첫 명성에서 사망까지는 약 28년이에요.
코르시카 소년이 장군이 되기까지: 브리엔에서 이집트 원정까지
나폴레옹은 1779년 5월 15일, 9세에 브리엔 군사학교에 들어갔어요. 코르시카 출신 소년이 프랑스 본토에서 군사 교육을 받기 시작한 거예요. 어린 시절과 교육 과정은 아래 '함께 읽으면 좋은 글'에서 따로 다뤄요.
첫 전환점은 1793년의 툴롱이에요. 그해 보나파르트 가문은 코르시카를 떠나 6월 13일 툴롱에 도착했어요. 고향에서 사실상 피신한 거예요. 같은 해 8월 28일부터 12월 19일까지 툴롱 포위전이 벌어졌어요.
툴롱 포위전에서 나폴레옹은 포병 지휘관으로 활약했어요. 이 전투로 첫 군사적 명성을 얻었고, 여단장으로 진급했어요. 툴롱을 점령하고 있던 영국군은 12월 18일 철수했어요.
두 번째 장면은 1795년 10월 5일 파리예요. 나폴레옹은 정치가 바라스의 요청을 받았어요. 그리고 당시 의회였던 국민공회에 맞서 일어난 왕당파 봉기를 진압하는 데 참여했어요. 이 사건은 프랑스 혁명 때 쓰던 달력, 곧 혁명력으로 '방데미에르 13일'이라고 불러요.
혁명력 이름이 나오면 처음에는 헷갈려요. 두 날짜만 짝지어 두면 돼요. '방데미에르 13일'은 1795년 10월 5일이에요. 뒤에 나오는 '브뤼메르 18일'은 1799년 11월 9일이에요. 책에서 혁명력 날짜가 보이면 괄호 속 양력 날짜를 함께 보면 돼요.
그다음은 이탈리아예요. 1796년 3월 2일,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방면군 사령관에 임명됐어요. 그리고 3월 11일 부대로 출발했어요. 26세에 한 방면군 전체를 맡은 거예요. 이 원정에서 그는 수가 더 많은 적군을 상대로 7개월 동안 7번 승리했어요.
1798년 5월 19일에는 이집트 원정을 떠났어요. 두 원정은 순서가 자주 헷갈리는데, 어느 쪽이 먼저일까요? 이탈리아가 먼저(1796년)이고, 이집트가 나중(1798년)이에요. 이집트 원정 출발에서 다음 해 쿠데타까지는 약 1년 6개월이 걸렸어요.
브뤼메르 쿠데타에서 황제까지: 통령과 황제는 어떻게 다른가요?
1799년 11월 9~10일, 나폴레옹은 브뤼메르 쿠데타를 일으켰어요. 그 결과 시에예스, 로제 뒤코와 함께 임시 통령이 됐어요. 이어 12월 15일 새 헌법이 공포되면서 통령정부가 정식으로 출범했어요. 나폴레옹은 그 체제의 제1통령이 됐어요.
1802년에는 국민투표를 거쳐 종신통령이 됐어요. 통령 자리를 평생 맡게 된 거예요. 2년 뒤인 1804년 5월 18일, 원로원 의결로 '프랑스인의 황제'로 선포됐어요. 이때 프랑스 제1제국이 세워졌어요.
네 직함은 이름이 비슷해 헷갈리기 쉬워요. 시기와 근거를 나란히 놓으면 이래요.
| 직함 | 시작 시점 | 근거가 된 일 | 나폴레옹의 지위 |
|---|---|---|---|
| 임시 통령 | 1799년 11월 | 브뤼메르 쿠데타 | 세 명 중 한 명 |
| 제1통령 | 1799년 12월 15일 | 새 헌법 공포 | 통령정부의 실권자 |
| 종신통령 | 1802년 | 국민투표 | 평생 맡는 통령 |
| 황제 | 1804년 5월 18일 | 원로원 의결 | 제1제국의 군주 |
종신통령이 된 날짜는 자료마다 달라요.
- 재단 '주요 날짜' 연표: 국민투표가 제안된 1802년 5월 10일
- 같은 재단의 청소년용 연표: 5월 12일
- 다른 연표들: 국민투표 결과가 확정된 1802년 8월 2일
시험이나 과제에서는 "1802년 국민투표로 종신통령"이라고 쓰면 돼요. 그러면 어느 자료와도 어긋나지 않아요.
황제 선포일과 대관식 날짜도 따로 봐야 해요. 황제로 선포된 날은 1804년 5월 18일이에요. 대관식은 같은 해 12월 2일 파리 노트르담에서 열렸어요. 이 대관식에서 나폴레옹은 스스로 관을 썼어요. 재위 기간을 셀 때는 대관식이 아니라 선포일인 5월 18일을 기준으로 삼아요.
두 번의 퇴위와 두 번의 유배: 엘바섬에서 세인트헬레나섬까지
첫 번째 퇴위는 1814년 4월 퐁텐블로에서 있었어요. 나폴레옹은 휘하 원수들의 압력을 받았어요. 4월 4일에는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준다는 조건을 붙여 퇴위했어요. 그 뒤 조건 없이 물러났어요.
조건 없는 퇴위 날짜도 자료마다 달라요.
- 재단 '주요 날짜' 연표와 위키백과: 4월 6일
- 재단 청소년용 연표: 4월 11일
4월 11일은 퐁텐블로 조약 비준일과 섞여 쓰였을 가능성이 있어요. 이 글은 '주요 날짜' 연표를 따라 첫 재위의 끝을 4월 6일로 잡았어요.
퇴위 뒤 나폴레옹은 1814년 5월 4일 지중해의 엘바섬에 상륙했어요. 이것이 첫 번째 유배예요. 약 10개월을 머문 뒤 1815년 2월 26일 섬을 스스로 빠져나왔어요. 3월 1일 프랑스 남부 골프쥐앙에 상륙했고, 3월 20일 파리에 들어갔어요. 이날부터 두 번째 재위, 곧 백일천하가 시작돼요.
하지만 1815년 6월 18일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했어요. 나흘 뒤인 6월 22일 두 번째로 퇴위했어요.
백일천하는 정말 100일이었을까요? 3월 20일 파리 입성부터 6월 22일 퇴위까지는 94일이에요. 이름은 '백일'이지만 실제로는 100일이 조금 안 돼요. 엘바섬 출발(2월 26일)부터 따지면 116일이에요.

두 번째 유배지는 세인트헬레나섬이에요. 나폴레옹은 1815년 10월 이 섬에 도착했어요. 이후 롱우드에서 지내다 1821년 5월 5일 51세로 숨졌어요. 유배 기간은 약 5년 7개월이고, 다시는 섬을 떠나지 못했어요.
두 섬을 헷갈리는 분이 많아요. 나란히 놓으면 이래요.
| 유배지 | 기간 | 앞선 사건 | 머문 기간 | 결말 |
|---|---|---|---|---|
| 엘바섬 | 1814~1815년 | 첫 번째 퇴위 | 약 10개월 | 스스로 빠져나와 다시 황제가 됨 |
| 세인트헬레나섬 | 1815~1821년 | 워털루 패배와 두 번째 퇴위 | 약 5년 7개월 | 섬을 떠나지 못하고 사망 |
세인트헬레나 도착일은 자료에 따라 하루 차이가 나요. 재단 '주요 날짜' 연표는 10월 16일, 청소년용 연표는 10월 17일로 적어요. 도착 날짜를 정확히 써야 한다면 어느 자료를 따랐는지 함께 밝히는 편이 안전해요.

자주 묻는 질문
나폴레옹은 몇 년 동안 황제였나요?
두 재위를 더하면 약 10년 2개월이에요. 첫 재위는 1804년 5월 18일부터 1814년 4월 6일까지로 10년이 조금 안 돼요. 두 번째 재위는 1815년 3월 20일부터 6월 22일까지 94일이에요. "1804~1815년 황제"라는 표현은 처음과 끝만 이은 거예요. 그 사이 약 11개월은 황제가 아니었어요.
책마다 나폴레옹 관련 날짜가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떤 사건을 기준으로 삼느냐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종신통령의 경우, 국민투표 제안일을 쓰면 5월, 결과 확정일을 쓰면 8월이 돼요. 1814년 퇴위도 자료에 따라 4월 6일과 4월 11일로 갈려요. 퐁텐블로 조약 비준일과 섞여 쓰였을 가능성이 있어요.
쿠데타 날짜가 '9~10일'로 이틀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브뤼메르 쿠데타는 1799년 11월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진행됐어요. 혁명력으로는 브뤼메르 18일과 19일이에요. 흔히 '브뤼메르 18일'이라고 줄여 부르지만, 연표에는 이틀로 적는 게 정확해요.
마무리
나폴레옹의 생애는 일곱 장면으로 잡으면 돼요.
- 1769년 출생
- 1793년 툴롱
- 1796년 이탈리아 원정
- 1799년 쿠데타
- 1804년 황제 즉위
- 1814~1815년 두 번의 퇴위
- 1821년 세인트헬레나 사망
처음 공부하는 분이라면 이 일곱 장면의 연도부터 외우면 돼요. 과제나 시험에 날짜를 써야 하나요? 종신통령, 1814년 퇴위, 세인트헬레나 도착일처럼 자료마다 다른 날짜는 연도나 월까지만 쓰세요. 아니면 따른 자료를 함께 밝히면 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