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이 대관식에서 스스로 관을 쓴 장면, 흔히 즉흥적인 교황 모욕으로 알려져 있죠. 하지만 여러 역사가는 교황과 미리 합의하고 리허설까지 한 연출로 봐요. 나폴레옹은 1804년 원로원 결정으로 황제가 됐어요. 대관식은 같은 해 12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열렸고요. 아래에서 황제가 된 과정부터 대관식 당일 순서까지 차례로 풀어 볼게요.
나폴레옹은 어떻게 황제가 되었나요? (카두달 음모부터 원로원 선포까지)
먼저 1804년 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볼게요. 당시 나폴레옹의 직함은 '종신 제1통령'이었어요. 1802년 국민투표로 평생 통령 자리를 보장받은 상태였죠. 그런데 1804년 초 그를 노린 왕당파 음모가 드러나요. 주모자의 이름을 따서 이 사건을 '카두달 음모'라고 불러요.
체포는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어요.
- 2월 14일: 모로 장군 체포
- 2월 28일: 피슈그뤼 장군 체포
- 3월 9일: 왕당파 지도자 조르주 카두달 체포
피슈그뤼는 4월 5일 감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어요. 5월 28일에는 센 중죄재판소에서 재판이 열렸어요. 피고인은 카두달과 모로 장군을 포함해 47명이었어요.
카두달은 6월 25일 처형됐어요. 모로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가 망명으로 감형됐고요. 영국은 음모 자금을 대거나 음모자들이 해협을 건너도록 도운 것으로 보여요.
체포와 재판이 이어지는 사이 정치 체제도 바뀌었어요. 5월 18일 원로원은 보나파르트를 '프랑스인의 황제' 나폴레옹 1세로 선포했어요. 이렇게 원로원이 내린 결정을 '원로원 의결(senatus-consulte)'이라고 해요. 반대 3표와 기권 2표를 빼면 모두 찬성이었어요. 마지막 체포가 있은 지 약 두 달 뒤의 일이에요.

1804년 국민투표는 어떻게 치러졌나요?
원로원 선포만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황제 자리를 자손에게 물려주는 '세습 제정'은 국민투표에 부쳐졌어요. 투표는 1804년 6월에 실시됐어요.
이 투표는 공개 투표였어요. 누가 찬성하고 반대했는지 드러나는 방식이었죠. 백지표나 무효표도 낼 수 없었어요. 그래서 결과에 조작이 있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에요.
결과 수치는 자료마다 달라요.
- Fondation Napoléon과 영문 위키백과: 찬성 3,521,675표
- 일부 2차 자료: 찬성 3,572,329표
- 반대표: 대부분의 자료는 2,579표, 일부 자료는 2,569표
이 글에서는 Fondation Napoléon의 수치를 기준으로 써요. 찬성 3,521,675표, 반대 2,579표예요.
결과가 나온 날짜도 매체에 따라 다르게 적혀 있어요. Fondation Napoléon은 개표가 끝난 날을 8월 2일로 적어요. 영문 위키백과는 결과 공식 발표일을 11월 6일로 적고요. 개표 종료일과 공식 발표일을 구분해서 보면 두 날짜가 모두 들어맞아요.
예시: 1802년 투표와 비교하면
두 투표를 비교하면 흐름이 보여요. 1802년 종신 통령 국민투표는 찬성 3,653,600표, 반대 8,272표였어요. 아래는 Fondation Napoléon 수치로 직접 계산한 예시예요.
- 1802년 반대 비율: 8,272 ÷ 3,661,872 ≈ 약 0.23%
- 1804년 반대 비율: 2,579 ÷ 3,524,254 ≈ 약 0.07%
찬성표는 1804년이 약 13만 표 적어요. 반대표는 1802년의 3분의 1 아래로 줄었고요. 공개 투표라 반대표를 내기 어려웠다는 사정을 함께 봐야 하는 숫자예요.
대관식 장소는 왜 랭스가 아닌 노트르담 대성당이었나요?
황제 선포 뒤 남은 일은 대관식이었어요. 대관식(sacre)은 황제가 된 사람에게 종교 의식으로 관을 씌우고 축복하는 행사예요. 황제 '선포'와는 다른 날 따로 열렸어요. 프랑스 왕들은 전통적으로 랭스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렀어요. 나폴레옹은 이 전통을 따르지 않았어요.
왜 랭스를 피했을까요? 랭스를 고르면 혁명으로 무너진 부르봉 왕가가 떠올라요. 나폴레옹은 그 연상을 피하려 했어요. 샤를마뉴와 인연이 깊은 아헨(엑스라샤펠)도 후보로 검토했어요. 최종 결정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었어요.
세 장소의 차이는 아래와 같아요.
| 후보지 | 떠오르는 상징 | 결과 |
|---|---|---|
| 랭스 대성당 | 프랑스 왕의 전통 대관 장소, 부르봉 왕가 | 부르봉 연상을 피하려고 제외 |
| 아헨(엑스라샤펠) | 샤를마뉴 | 검토했지만 채택하지 않음 |
|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 수도 파리 | 대관식 장소로 결정 |
샤를마뉴의 상징은 장소 대신 다른 곳에 들어갔어요. 새 황제관은 샤를마뉴의 관을 닮게 만들었어요. 부르봉 왕가의 백합 문장 대신 독수리를 상징으로 썼고요.
나폴레옹은 9월 15일 교황에게 초청장을 보냈어요. 파리로 와서 대관식을 주재해 달라는 요청이었어요. 교황 비오 7세는 이 초청에 응했어요.
1804년 12월 2일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대관식은 1804년 12월 2일에 열렸어요. 당시 쓰던 공화력으로는 13년 프리메르 11일이에요. 황제 선포일(5월 18일)부터 세어 보면 198일 뒤예요. 당일 순서는 아래와 같았어요.
- 종교 서약: 교황이 나폴레옹에게 종교 서약을 받아요. 교황이 맡은 종교 의식 가운데 하나인 도유에 앞서 하는 절차예요.
- 도유와 기도: 교황이 랭스 전례에서 가져온 기도와 축복을 올려요.
- 황제의 자기 대관: 나폴레옹이 제단에서 관을 직접 들어 자기 머리에 써요.
- 황후 대관: 나폴레옹이 자기 앞에 무릎 꿇은 조제핀에게 황후관을 씌워요.
- 왕좌 축복: 교황이 왕좌에 앉은 황제를 축복해요. 축복문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이 왕좌 위에 굳건히 세우시기를"로 시작해요.
- 헌법 서약: 미사가 끝난 뒤 나폴레옹은 페슈 추기경이 든 복음서에 손을 얹고 헌법 서약을 해요.
이 순서에서 눈에 띄는 점이 있어요. 교황의 역할은 서약을 받고, 기도하고, 축복하는 것이었어요. 관을 씌우는 일은 교황의 몫이 아니었죠.
재미있는 건 랭스를 피했으면서도 기도문은 랭스 전례에서 가져왔다는 거예요. 장소는 바꾸었지만 기도와 축복은 랭스 전례 그대로였어요.
나폴레옹은 왜 스스로 왕관을 썼나요?
이 질문에는 두 가지 시각이 있어요. 한쪽은 대중적인 일화예요. 나폴레옹이 교황을 모욕하려고 즉흥적으로 스스로 관을 썼다는 이야기죠. 다른 쪽은 여러 역사가의 해석이에요. 미리 합의한 연출이었다는 시각이에요.
교황과 미리 합의했다는 근거
자기 대관은 다른 절차와 함께 미리 리허설한 순서였어요. 교황 비오 7세도 이 순서를 승인했고요. 역사가 크로닌과 마컴도 같은 입장이에요. 나폴레옹은 자신이 직접 관을 쓰겠다고 교황에게 미리 말했어요. 교황은 반대하지 않았고요.
교황이 내건 조건은 따로 있었어요. 나폴레옹과 조제핀이 교회 혼례를 다시 올리는 것이었어요.
스스로 관을 쓴 행동이 전한 메시지
미리 합의했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에요. 역사가 마컴은 자기 대관을 이렇게 해석해요. 나폴레옹은 종교적 축성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인민의 뜻으로 황제가 된다는 걸 보여 주었다는 거예요.
새 황제는 스스로 관을 쓰고 혁명의 성과를 지키겠다고 서약해 전통과 끊어 냈어요. 앞에서 본 순서를 다시 떠올려 보면 이 해석이 구체적으로 보여요.
- 권력의 근거: 원로원 선포와 국민투표가 먼저 있었어요.
- 관을 씌운 사람: 교황이 아니라 나폴레옹 자신이었어요.
- 마지막 서약: 종교 서약에 더해 헌법 서약으로 의식을 마쳤어요.
그러니까 교황은 축복을 주었어요. 하지만 황제 자리를 준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는 걸 의식 순서로 보여 준 거예요.
다비드의 대관식 그림은 실제와 무엇이 다른가요?
나폴레옹 대관식을 떠올리면 많은 사람이 자크루이 다비드의 거대한 그림을 먼저 생각해요. 그런데 이 그림에는 나폴레옹이 스스로 관을 쓰는 장면이 없어요.

다비드는 최종 주제로 조제핀의 대관 장면을 골랐어요. 이미 관을 쓴 나폴레옹이 무릎 꿇은 조제핀에게 황후관을 씌우려는 순간이에요. 앞의 당일 순서로 보면 4단계에 해당해요.
그림과 실제가 다른 점도 있어요. 나폴레옹의 어머니(모후, Madame Mère)는 실제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림에는 그려져 있어요. 이 그림은 기록 사진이 아니라 황제가 주문한 공식 기념화라는 걸 알고 보면 좋아요.
작품 정보는 프랑스 문화부 Joconde 데이터베이스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 제목: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과 조제핀 황후의 대관〉
- 소장: 루브르 박물관 회화부(소장 번호 INV. 3699)
- 크기: 세로 621cm × 가로 979cm
- 주문: 나폴레옹 1세가 튈르리궁 근위대실에 걸려고 주문
- 서명·날짜: 1806년과 1807년
자주 묻는 질문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날은 5월 18일인가요, 12월 2일인가요?
법적으로 황제가 된 날은 1804년 5월 18일이에요. 원로원 의결로 황제 선포가 이루어진 날이죠. 12월 2일은 이미 황제가 된 사람의 대관식(sacre)이 열린 날이에요. 두 날짜는 서로 다른 사건이에요.
교황은 대관식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나요?
역할이 있었어요. 교황 비오 7세는 도유 전에 종교 서약을 받았어요. 랭스 전례의 기도와 축복도 올렸고요. 왕좌에 앉은 황제를 축복한 것도 교황이었어요. 관을 씌우는 일만 맡지 않았어요.
조제핀의 관은 누가 씌웠나요?
나폴레옹이 직접 씌웠어요. 조제핀은 나폴레옹 앞에 무릎을 꿇고 황후관을 받았어요. 다비드의 그림이 담은 장면이 바로 이 순간이에요.
마무리
나폴레옹은 1804년 카두달 음모 수사가 이어지던 시기에 황제가 됐어요. 원로원 선포와 공개 국민투표를 거쳐 세습 황제가 된 거예요. 12월 2일 노트르담에서는 교황의 축복을 받되, 관은 스스로 썼어요. 대관식 일화를 '교황 모욕'으로 알고 있었다면, 사전 합의와 리허설이 있었다는 역사가들의 해석을 함께 보면 돼요. 다비드의 그림을 감상할 때는 그 그림이 자기 대관이 아니라 조제핀의 대관 장면이라는 걸 알고 보면 좋아요.
출처
- Fondation Napoléon, From Life Consulship to the hereditary Empire (1802-1804)
- Fondation Napoléon, The day of Napoleon's coronation, 11 Frimaire An XIII (2 December 1804)
- Fondation Napoléon, Sacre de l'Empereur Napoléon Ier
- 프랑스 문화부 Joconde 데이터베이스, 다비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 World History Encyclopedia, Coronation of Napoleon I
- World History Encyclopedia, Cadoudal Affair
- Wikipedia, 1804 French constitutional referendum
- Wikipedia, Coronation of Napoleon
- Jacques-Louis David (1748–1825), 루브르 박물관 소장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