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 철학 입문

테세우스의 배 역설: 판자를 다 바꾼 배도 같은 배일까

테세우스의 배 역설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플루타르코스의 원래 이야기와 홉스의 재조립 변형, 동일성의 이행성 문제를 다루고, 상대적 동일성·4차원주의 등 철학자들의 답을 쉽게 비교합니다.

알려줌이 박사

· 2026.10.26 수정 · 11분 분량

2026년 10월 25일 기준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영역본과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SEP) 기준

낡은 판자를 떼어 내고 새 판자로 바꾸는 고대 그리스 노선과 옆에 쌓인 옛 판자

테세우스의 배 역설은 이런 질문이에요. 낡은 판자를 하나씩 새것으로 바꿔요. 그러다 원래 판자가 하나도 안 남았다면, 그 배는 여전히 같은 배일까요? 떼어 낸 옛 판자로 배를 다시 조립하면 질문은 더 어려워져요. 원래 배와 같다고 주장할 만한 배가 두 척 생기니까요.

먼저 답부터 말하면, 철학자들의 답은 여러 갈래로 갈려요. 그리고 어떤 답을 골라도 무언가는 내려놓아야 해요. 이 역설이 어디서 나왔는지, 두 배가 생기면 뭐가 모순인지, 철학자들은 어떻게 답했는지 차례로 볼게요.

테세우스의 배 역설이란 무엇인가요?

이야기의 출발점은 고대 그리스 작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테세우스 편 23장이에요.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전설적인 영웅이에요. 젊은이들과 함께 배를 타고 떠났다가 무사히 돌아왔죠. 그때 탄 배는 노가 30개 달린 배(30노선)였어요.

아테네인들은 이 배를 오랫동안 보존했어요. 데메트리오스 팔레레우스 시대까지요. 데메트리오스는 마케도니아의 카산드로스 아래에서 아테네를 다스린 사람이에요. 기원전 317~307년의 일이에요.

배를 보존한 방법이 문제의 씨앗이었어요. 아테네인들은 낡은 목재를 때때로 떼어 냈어요. 그 자리에는 새롭고 튼튼한 목재를 끼워 넣었고요. 이 일이 반복되면 언젠가는 처음 판자가 하나도 안 남게 돼요.

그래서 이 배는 철학자들의 단골 예가 됐어요. 철학자들은 이 배를 두고 "같은 배다"와 "같은 배가 아니다"로 의견이 갈렸죠.

플루타르코스의 원래 질문과 홉스의 재조립 변형은 어떻게 다른가요?

'테세우스의 배'에는 서로 다른 두 이야기가 섞여 있어요. 두 이야기는 출처도 다르고, 질문의 구조도 달라요.

먼저 플루타르코스의 원래 이야기는 배 한 척에 관한 거예요. 이 배는 '성장', 곧 자라는 것에 관한 논쟁에서 예로 쓰였어요. 부분이 계속 바뀌는 대상이 같은 것으로 남느냐를 묻는 질문이죠. 여기서는 후보가 하나뿐이에요. 판자를 바꾼 배가 원래 배인지 아닌지만 따지면 돼요.

배가 두 척 생기는 변형은 훗날 토머스 홉스가 덧붙였어요. 누군가 떼어 낸 원래 판자를 모아 둬요. 그러다 그 판자로 배를 다시 조립하는 이야기예요.

두 배에는 이름을 붙여 구분해요.

  • 교체된 배(Replacement): 판자를 차례로 새것으로 바꾼 배예요.
  • 재조립된 배(Reassembly): 떼어 낸 옛 판자를 모아 다시 조립한 배예요. 재료는 처음 배와 같아요.

두 질문은 이렇게 달라요. 플루타르코스의 질문은 "부품이 다 바뀌어도 같은가"예요. 홉스의 변형은 "같다고 주장할 후보가 둘이면 어느 쪽인가"예요. 이 글에서 다루는 철학적 해법은 배가 두 척 생기는 경우의 모순을 다뤄요.

판자 교체와 옛 판자 재조립으로 배가 두 척 생기는 과정
홉스의 재조립 변형을 단계로 정리한 그림입니다.

배가 두 척이면 왜 모순이 되나요? (동일성의 이행성)

교체된 배만 있을 때는 상식대로 "같은 배"라고 답해도 큰 문제가 없어요. 재조립된 배가 나타나면 상황이 달라져요. 재조립된 배도 원래 판자로 만들었으니 원래 배라고 주장할 근거가 있거든요.

여기서 '같다'는 말을 철학에서는 동일성이라고 불러요. 둘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하나의 같은 대상이라는 관계예요. "샛별과 개밥바라기는 같은 별이다"에서 쓰는 '같다'가 바로 이거예요. 동일성에는 이행성이라는 성질이 있어요. A가 B와 같고 A가 C와 같으면, B와 C도 같아야 한다는 거예요.

기호를 붙여 구조를 따라가 볼게요. 처음 배를 A, 교체된 배를 B, 재조립된 배를 C라고 할게요.

  1. 판자를 바꿔도 배는 살아남는다는 상식에 따라 A = B라고 해요.
  2. 원래 재료로 만든 배는 원래 배라는 직관에 따라 A = C라고 해요.
  3. 동일성은 대칭적이므로 A = B는 B = A와 같아요.
  4. 이행성에 따라 B = A이고 A = C이면 B = C여야 해요.
  5. 그런데 B와 C는 나란히 떠 있는 서로 다른 두 척이에요. 곧 B ≠ C예요.

1번과 2번을 모두 받아들이면 5번과 정면으로 부딪쳐요. 두 배가 모두 원래 배와 동일하다고 하면 이행성과 충돌하는 거죠.

그럼 이행성을 그냥 버리면 되지 않을까요? 그게 쉽지 않아요. 동일성의 대칭성과 이행성은 라이프니츠 법칙에서 따라 나오거든요. 라이프니츠 법칙은 "동일한 것은 모든 성질이 같다"는 원리예요.

B가 A와 하나의 같은 대상이고, C도 A와 하나의 같은 대상이라고 해 볼게요. 그러면 B와 C의 성질은 모두 같아야 해요. 하지만 B와 C는 위치부터 달라요. 그래서 이행성을 버리려면 라이프니츠 법칙까지 손봐야 해요.

결국 선택지는 몇 가지로 좁혀져요.

  • 1번이나 2번 중 하나를 버리거나,
  • '같다'의 뜻을 다시 정하거나,
  • 배가 무엇인지에 대한 그림을 바꾸는 거예요.

아래 해법들은 각각 이 중 하나를 골라요.

새 판자로 된 배와 옛 판자로 다시 조립한 배가 나란히 떠 있는 모습
설명용 일러스트입니다. 교체된 배와 재조립된 배를 개념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상대적 동일성: '같은 배'와 '같은 판자 모음'을 나눠 묻기

첫 번째 해법은 철학자 기치의 상대적 동일성이에요. 이 견해는 "그냥 같다"는 절대적 동일성을 인정하지 않아요. 대신 언제나 "무엇으로서 같은가"를 붙여서 물어요.

이 기준을 테세우스의 배에 적용하면 답이 갈려요. 교체된 배는 원래 배와 '같은 배'예요. 재조립된 배는 원래 배와 '같은 판자 모음'이고요. 두 질문이 다르니 두 답이 충돌하지 않는다는 설명이에요.

대가도 있어요. 반론은 이래요. 이행성이 깨질 수 있는 관계를 과연 '동일성'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거예요. 그리고 아메바가 똑같은 두 개체로 대칭적으로 나뉘는 사례도 있어요. 이 견해가 풀기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죠.

4차원주의와 단계 이론: 배를 시간에 펼쳐 보기

두 번째 해법은 배가 무엇인지에 대한 그림 자체를 바꿔요. 4차원주의(퍼듀런티즘)는 대상이 생애의 시간 전체에 걸쳐 펼쳐져 있다고 봐요. 공간에 길이와 폭이 있듯, 대상은 시간 방향으로도 부분을 가진다는 생각이에요. 이렇게 시간에 펼쳐진 대상에서 특정 시기에 해당하는 조각을 시간적 부분이라고 불러요.

이 그림에서 배는 "어느 순간에 통째로 존재하는 물건"이 아니에요. 건조된 때부터 사라질 때까지 이어진 긴 덩어리예요. 중요한 건 서로 다른 두 4차원 대상이 시간적 부분을 나눠 가질 수 있다는 거예요. 두 갈래 길이 출발 구간을 함께 쓰다가 갈라지는 모습과 비슷해요.

테세우스의 배에 적용하면 이래요. 교체된 배와 재조립된 배는 처음부터 서로 다른 두 대상이에요. 다만 두 배는 과거의 시간적 부분, 곧 원래 배 시절을 공유해요. 그래서 "둘 다 원래 배였다"는 말은 "둘이 과거 부분을 함께 가진다"는 뜻으로 풀려요. 하나의 같은 대상이라는 주장이 아니니까 이행성과 부딪히지 않아요.

4차원주의에도 비판이 있어요. 대표적인 예가 프랭크 잭슨이 제기한 '깜박이는 우주' 반론이에요.

이와 비슷하게 시간을 기준으로 보는 단계 이론도 있어요. 철학자 시어도어 사이더와 캐서린 호리가 이 견해를 발전시켰어요. 호리는 이를 엑스듀런티즘이라고 불러요. 단계 이론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이 배"라고 할 때 가리키는 건 4차원 덩어리 전체가 아니에요. 그 순간의 '단계'예요.

그렇다면 "이 배가 예전에 테세우스가 탄 배다"라는 말은 어떻게 이해할까요? 단계 이론은 시간을 가로지르는 이런 말을 동일성이 아닌 대응자(counterpart) 관계로 설명해요. 지금의 단계와 과거의 단계가 서로 대응하는 관계라는 뜻이에요. 대응자 관계는 동일성이 아니에요. 그래서 과거 단계 하나에 지금 단계 둘이 대응해도 이행성 문제가 안 생겨요. 이런 이유로 단계 이론이 분열 사례를 더 잘 다룬다고 봐요.

일시적 동일성: 한때 같았다가 나중에 달라진다

세 번째 해법은 '같다'는 관계에 시간을 붙여요. 조지 마이로와 앙드레 갈루아가 내놓은 일시적 동일성이에요. 이 견해는 a와 b가 어떤 때는 동일하고, 어떤 때는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고 봐요.

이 견해에서 교체된 배와 재조립된 배는 한때 동일했어요. 판자를 바꾸기 전에는 둘 다 하나의 배였으니까요. 재조립이 끝난 뒤에는 서로 다른 배가 돼요. 갈루아는 이 생각에 맞춰 이행성을 고친 원리(TTI)를 제안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철학자는 일시적 동일성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가장 큰 이유는 라이프니츠 법칙과 충돌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에요. 바더는 동시에 분열과 융합이 일어나는 사례를 들어 갈루아의 수정 원리를 비판했어요. 사이더는 이 견해가 시간에 관한 특정 이론(B-이론)과 맞지 않는다고 봤어요.

부분 본질주의와 제거주의: 역설이 생기지 않는다는 답

지금까지의 해법은 역설을 받아들인 뒤 풀어내는 방식이었어요. 다른 쪽에서는 역설의 전제 자체를 부정해요.

부분 본질주의는 철학자 로더릭 치좀의 견해예요. 이 견해는 대상이 지금의 부분을 반드시 그대로 가져야 한다고 봐요. 판자 하나만 바꿔도 이미 다른 배라는 뜻이에요. 앞에서 본 1번 단계, 곧 "판자를 바꿔도 배는 살아남는다"는 상식을 처음부터 거부하는 거죠. 그러니 교체된 배는 원래 배 후보가 못 되고, 이행성 충돌도 안 일어나요.

제거주의는 더 멀리 가요. 이 견해는 배처럼 문제를 일으키는 대상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요. 배가 없으니 "어느 배가 원래 배인가"라는 질문도 성립하지 않아요.

두 견해는 역설을 깔끔하게 없애요. 대신 "수리한 배도 같은 배"라는 일상적 판단이나 "배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내려놓아야 해요.

해법별로 비교하면 무엇이 다른가요?

지금까지 본 해법을 같은 기준으로 놓고 비교하면 다음과 같아요.

해법 원래 배는 어느 쪽인가 치르는 대가
상대적 동일성(기치) '같은 배'로는 교체된 배, '같은 판자 모음'으로는 재조립된 배 이행성이 깨지는 관계를 동일성이라 부를 수 있는지 의문, 대칭 분열 사례
4차원주의 두 배 모두 원래 배 시절을 공유하는 서로 다른 대상 '깜박이는 우주' 반론 같은 비판
단계 이론(사이더, 호리) 지금의 두 배가 모두 과거 배와 대응자 관계 일상 말 "이 배"를 순간의 단계로 읽어야 함
일시적 동일성(마이로, 갈루아) 두 배는 한때 동일했다가 나중에 달라짐 라이프니츠 법칙과의 충돌, B-이론과의 충돌
부분 본질주의(치좀) 판자를 바꾼 순간 이미 다른 배 수리해도 같은 배라는 상식을 버림
제거주의 배라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음 배 같은 일상 대상의 존재를 부정

표를 읽는 요령은 간단해요. 어떤 해법도 공짜가 아니에요. 각 해법은 상식, '동일성'의 뜻, 대상에 대한 그림 중 무언가를 내려놓아요.

스스로 답을 골라 보고 싶다면 이렇게 따져 보면 돼요. 먼저 "판자를 바꿔도 같은 배"라는 상식을 지킬지 정해요. 지키지 않는다면 부분 본질주의나 제거주의 쪽이에요. 지킨다면 하나를 더 골라요. '같다'의 뜻을 바꿀지, 아니면 대상을 시간에 펼쳐 볼지요. 그에 따라 남은 해법 중에서 고르면 돼요.

마무리

테세우스의 배는 플루타르코스의 "부품이 다 바뀌어도 같은가"에서 출발했어요. 홉스의 재조립 변형이 더해지면서 이행성과 충돌하는 역설이 됐죠. 철학자들은 세 갈래로 답해 왔어요. '같다'의 뜻을 바꾸거나, 대상을 시간에 펼쳐 보거나, 전제 자체를 거부하는 방식이에요.

사고실험을 처음 접한다면 위 다섯 단계(A=B, A=C, 대칭성, 이행성, B≠C) 중 어느 고리를 끊을지부터 생각해 보면 돼요. 각 해법을 더 깊이 읽고 싶다면 아래 SEP 항목 두 개를 차례로 읽어 보세요.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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