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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독립운동 기념일 11월 3일 유래: 나주역 충돌부터 학생의 날까지

11월 3일이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인 이유를 정리합니다. 1929년 나주역 충돌에서 11월 3일 광주 시위, 1930년 3월 전국 확산, 1953년 '학생의 날' 지정부터 2006년 이름 변경까지 설명합니다.

역사쌤알려줌 편집팀

· 2026.10.26 수정 · 8분 분량

2026년 10월 25일 기준 · 국가기록원, 국가보훈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자료 기준

1920년대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교문을 나서 거리로 향하는 모습을 그린 일러스트입니다.

11월 3일은 1929년 광주 학생들이 일제에 맞서 거리로 나선 날이에요. 이날을 기리려고 '학생의 날'을 만들었고, 뒤에 지금 이름으로 바꿨어요. 아이에게 설명하거나 숙제에 쓸 때 필요한 유래와 날짜 변화를 아래에 차례로 풀었어요.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은 왜 11월 3일인가요?

11월 3일은 광주에서 학생 시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이에요. 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듬해 3월까지 이어졌어요.

그럼 진짜 출발점은 언제였을까요? 직접적인 계기는 나흘 앞선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벌어진 충돌이에요. 다만 나주역 충돌은 하나의 계기였지, 그 자체가 광주학생운동은 아니었어요. 1953년에는 광주학생운동을 기념해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정했어요.

1929년의 11월 3일에는 세 가지 의미가 겹쳐 있었어요.

  • 메이지절: 일본 메이지 천황의 생일을 기리는 일본 기념일이었어요.
  • 음력 개천절: 그해 11월 3일은 음력으로 개천절이었어요.
  • 성진회 창립 3주년: 학생 비밀조직 성진회가 만들어진 지 3년째 되는 날이었어요.

일본이 자기 천황을 기리던 날, 한국 학생들은 같은 날 거리로 나섰어요. 아이에게 설명할 때는 이 세 가지 의미를 함께 짚어 주면 이해가 쉬워요.

나주역 충돌이 11월 3일 광주 시위로 커진 과정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출발한 통학열차가 나주역에 도착했어요. 이때 일본인 학생들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광주여고보) 학생들을 조롱했어요. 여학생들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긴 거예요.

이 모습을 본 광주고등보통학교(광주고보) 2학년 박준채가 일본인 학생과 맞붙었어요. 곧 경찰이 출동했어요. 그런데 경찰은 일본인 학생 편을 들었고, 오히려 박준채를 때렸어요.

나주역 사건을 묘사하는 방식은 자료마다 조금씩 달라요.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조롱했다'고 쓴 자료가 있어요. '개찰구에서 여학생을 밀쳤다'고 적은 자료도 있어요. 박준채와 피해 여학생 박기옥의 관계도 자료마다 달라요. '4촌 남동생'이라고 쓴 곳도 있고 '사촌동생'이라고 쓴 곳도 있어요. 학교 과제에 넣을 때는 어느 자료를 봤는지 함께 밝혀 두면 좋아요.

나주역 충돌 나흘 뒤인 11월 3일은 메이지절이었어요.

이날 학교에서는 메이지절 기념식이 열렸어요. 기념식이 끝나면 일본 신사에 참배하는 순서가 있었어요. 학생들은 이 신사 참배를 거부하기로 했어요.

오후 1시쯤 광주고보 학생 300여 명이 교문을 나섰어요. 학생들은 거리로 나가 시위를 벌였어요. 학교 안의 항의가 거리의 시위로 바뀐 순간이에요.

일제는 강하게 대응했어요. 이날 시위로 광주고보 학생 39명과 농업학교 학생 1명이 붙잡혔어요. 모두 40명이 구속된 거예요.

11월 3일 시위는 세 가지가 겹쳐 일어났어요.

  1. 나주역 충돌과 경찰의 편파적인 대응으로 쌓인 분노
  2. 일본 천황 생일 기념식과 신사 참배라는 상징적인 상황
  3. 학생 비밀조직 성진회의 창립 3주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어떻게 전국으로 퍼졌나요?

광주의 시위는 먼저 전라남도 여러 지역으로 번졌어요. 목포, 나주, 함평의 학생들이 뒤를 이었어요. 이어서 서울 학생들이 일어나면서 운동은 전국으로 커졌어요. 여러 학생이 함께 수업을 거부하는 '동맹휴학'이 대표적인 저항 방식이었어요. 이 흐름은 1930년 3월까지 이어졌어요.

1929년 10월 나주역 충돌부터 1930년 3월 전국 확산까지 학생독립운동의 흐름을 단계로 보여 주는 그림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국가보훈부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그림입니다.

참여 규모와 처벌 규모는 자료마다 숫자가 달라요. 한쪽 숫자만 옳다고 하기 어려우니, 자료별로 나란히 놓고 보면 이래요.

항목 국가보훈부(정책브리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여 학교 전국 320여 개 학교 194개 학교
참여 학생 5만 4천여 명 약 5만 4,000명
퇴학 582명 582명
무기정학 2,330명 2,330명
그 밖의 처벌 강제 전학 298명 붙잡혀 간 학생 1,642명

학생 수는 두 자료 모두 5만 4천 명 안팎이에요. 다만 '194개교 5,400여 명'이라고 적은 학술 논문도 있어요. 학생 수도 자료마다 다르게 나오는 셈이에요. 퇴학 582명과 무기정학 2,330명은 두 자료가 같아요.

숫자가 조금씩 달라도 분명한 사실이 있어요. 광주의 한 학교에서 시작된 시위가 다섯 달 가까이 이어졌어요. 그리고 전국의 학교로 번졌어요. 이 운동은 3·1운동, 6·10만세운동과 함께 일제강점기 3대 독립운동으로 꼽혀요.

수업이나 숙제에서 숫자를 쓸 때는 어떻게 할까요? 숫자 옆에 어느 자료에서 가져왔는지 같이 적어 두면 돼요. 예를 들어 '전국 320여 개 학교, 5만 4천여 명(국가보훈부 자료)'처럼요. 그러면 읽는 사람도 헷갈리지 않아요.

'학생의 날'은 어떻게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이 되었나요?

지금의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은 처음에 '학생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어요. 1953년 10월, 광주학생운동을 기념해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정했어요.

이 기념일은 한때 관련 규정에서 빠졌다가 다시 살아났어요. '학생의 날'은 1973년 3월 관련 규정에서 빠졌어요. 그러다 1984년 9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다시 법정기념일이 됐어요.

마지막 변화는 2006년의 이름 변경이에요. 2006년에 기념일 이름이 '학생의 날'에서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바뀌었어요. 같은 해 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름 변경 결의안이 통과됐어요.

1953년 학생의 날 지정부터 2018년 정부기념행사 격상까지 기념일의 변화를 단계로 보여 주는 그림입니다.
국가기록원, 정책브리핑 자료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정리한 그림입니다. 1973년 폐지는 보도 기준입니다.

날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11월 3일 그대로예요.

11월 3일은 공휴일인가요? 기념식은 누가 여나요?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은 법정기념일이지만 공휴일은 아니에요. 2026년 11월 3일은 화요일이고, 공휴일이 아니라서 쉬는 날이 아니에요.

이 기념일의 주관 부처는 교육부와 국가보훈부예요. 행사의 목적은 학생독립운동 정신을 이어받아 학생들의 자율역량과 애국심을 키우는 거예요.

기념식을 여는 주체는 2018년에 바뀌었어요. 2017년까지는 교육부 주관으로 지방교육청이 기념식을 열었어요. 2018년부터는 국가보훈부와 교육부가 함께 여는 정부기념행사로 격상됐어요. 2018년 당시에는 부처 이름이 '국가보훈처'였어요.

최근 기념식의 예로 2023년 제94주년 기념식이 있어요. 이 기념식은 11월 3일 오전 11시, 광주 서구 학생독립운동기념탑에서 열렸어요. 주제는 '타오르는 그날의 불꽃으로'였어요.

예시: 올해는 몇 주년인가요? 주년은 '그해 연도 − 1929'로 계산해요. - 2023년: 2023 − 1929 = 94 → 제94주년(정부 기념식 명칭과 일치) - 2026년: 2026 − 1929 = 97 → 제97주년 - 2029년: 2029 − 1929 = 100 → 제100주년

학교 행사 안내문이나 게시물을 만들 때 이 계산을 쓰면 주년을 틀리지 않아요.

자주 묻는 질문

나주역 사건과 광주학생독립운동은 같은 사건인가요?

같은 사건이 아니에요. 10월 30일 나주역 충돌은 운동의 '계기'예요. 운동 자체는 11월 3일 광주 시위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번진 학생들의 저항을 가리켜요.

'학생의 날'과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은 다른 날인가요?

같은 날이에요. 두 이름 모두 11월 3일을 가리켜요. 2006년에 이름만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바뀌었어요.

띄어쓰기는 어떻게 쓰나요?

공식 표기는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이에요. '기념일'을 띄어 써요.

기념식은 어디에서 열리나요?

2023년 제94주년 정부 기념식은 광주 서구 학생독립운동기념탑에서 열렸어요. 운동이 시작된 광주에서 기념식을 연 사례예요.

마무리

11월 3일은 1929년 광주 학생들이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거리로 나선 날이에요. 나주역 충돌에서 시작된 분노는 1930년 3월까지 전국 학생운동으로 번졌어요. 이날은 '학생의 날'을 거쳐 지금은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기리고 있어요. 수업이나 집에서 이 날을 다룬다면 10월 30일(계기)과 11월 3일(시작)을 구분해 주세요. 참여 숫자는 어느 자료의 숫자인지 함께 소개하면 돼요.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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